루카 21,12-19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오늘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 예고를 시작으로
종말에 닥칠 혼란과 재난을 자세히 이야기하신다.
그 전에 제자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말씀을 듣다 보면
‘점입가경’ 내지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 ->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 -> 모든 사람들로
확대되어가는 적대자들의 정체와
체포 -> 수감 -> 재판에 회부 -> 처형에 의한 죽음까지
점차 강도를 높이며 가해질 폭력을 생각한다면
제자들의 용기가 꺾일 수도 있겠다.
한편, 예수님의 격려와 행동 지침도 ‘점입가경’을 이룬다.
이런 박해가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을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그런데 변론할 말을 준비하지 말라고.
적대자에 맞서는 언변과 지혜는 예수님이 손수 주실거라고.
…그래도 할 말은 미리 좀 생각해 둬야 하는거 아닐까?
예수님은 한술 더 뜨신다.
너희들은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인내해서 생명을 얻으라고.
…아니 16절에서 박해로 죽임을 당할 거라면서요…?
말짱한 머리카락은 뭐며 인내로 얻는 생명이 대체 뭐지?

17절에서 18절로 넘어가는 순간은
SF 영화의 차원이동 장면에서 많이 나오는
웜홀을 통과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박해자들 앞에서
증언과 변론을 하느라 열을 올리다가
죽임을 당하는 순간
눈앞에 생겨난 웜홀로 빨려들어가
다른 차원의 영원한 생명으로 넘어가는 듯한 묘사다.
그리고 나면 오늘 복음 앞뒤에서 예고된
재난들이 일어나고 사람의 아들이 오신다.

제자들에게 닥칠 박해의 양상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데
반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격려와 보장은
거의 SF급이다.
현실의 눈으로 본다면
예수님의 보장만을 믿으면서
닥칠 일에 맞서기에는 자신이 없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는 걸 우리는 안다.
웜홀이 뚫리는 일은 SF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이 비현실적인 보상의 약속 때문에
이 복음이 언제나 희망적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현실에서는 막 죽을거 같단 말이에요 예수님.
힘들어 죽겠어요,
마음 아파 죽겠어요,
몸이 아파 죽겠어요,
등등의 소리가 저절로 나올 때는
뜬금없는 저런 생명같은 것
좀 옆으로 밀어놓고 싶을 때가 훨씬 많다.
그딴거 말고 좀 더 현실적인 방편이나
해결책을 말씀해주시면 안될까요, 예수님?

예수님께서 보장하시는 생명은
이 세상에서의 생존이 아니다.
재판에 피소되고 박해 받고
인내 속에 죽는 것은 현실이고
예수님 버전의 생명은
그 다음의 일이니 사실 알 수가 없다.
다만 위에서 본 모든 점입가경과 첩첩산중을 통과하고
죽어서 얻어질 생명이다.

SF 영화를 너무 많이 보신 것 같은 예수님의 말씀이지만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신뢰하고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예수님과 내가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
아웅다웅 쌓아온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껏 그래왔듯 예수님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리라는 믿음,
곧 예수님 자체에 대한 신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믿는다.
죽어서 얻는 생명이 솔직히 뭔지는 모르겠다.
좌우지간 예수님이 말씀하시니까…
내 예수님이 말씀하시니까 믿는다.

만일 저 세상의 영원한 생명이 없어도
제 한 평생은 당신을 안 덕분에 행복합니다.

그래도 예수님,
하도 자신있게 말씀하시니까
그럼 CG 없이 웜홀이 뚫리는 걸
한 번 기대해 봐도 되겠지요?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Gospel Lk 21:12-19
Jesus said to the crowd:
“They will seize and persecute you,
they will hand you over to the synagogues and to prisons,
and they will have you led before kings and governors
because of my name.
It will lead to your giving testimony.
Remember, you are not to prepare your defense beforehand,
for I myself shall give you a wisdom in speaking
that all your adversaries will be powerless to resist or refute.
You will even be handed over by parents,
brothers, relatives, and friends,
and they will put some of you to death.
You will be hated by all because of my name,
but not a hair on your head will be destroyed.
By your perseverance you will secure your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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