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45-51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특히 필립보와 나타나엘의 대화가 눈에 띈다.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이라고,
그리고 그분이 “나자렛 출신”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는 정말 율법과 예언서를 많이 읽고 공부해서 잘 하는 사람 같다.
“나자렛”이라는 동네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율법과 예언서에 그토록 해박할 정도면
아마도 매우 신앙 깊은 유대인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도 그를 보자 칭찬하실 정도다.
그러니 그의 대답,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는
촌구석 출신 소문 자자한 어느 젊은이에 대한 비아냥이 아니라
성경에 정통하고 신앙 깊은 이가 던지는
아주 진지하면서도 회의적인 질문이다.

나에게 나타나엘의 질문은
“성경만”을 보는 이가 가진 자기 확신의 위험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성경은 우리가 믿고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이해하고 우리 자신과 세상을 해석하는 우리 자신의 관점에 따라
우리에게 드러나는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성경만을 수 백 번 읽고 줄줄 외우며
성령께서 성경을 통해 자신에게 말씀해 주신다고 확신하는
이단 지도자들이 있다.
성경을 읽고 또 읽고 그토록 잘 아는데 왜 그들은 이단일까?
그들이 성경을 읽을수록 깨달음을 얻는게 아니라
그들의 이단 논리가 점점 더 단단해진다.
무엇이 문제일까?
결국은 성경을 읽는 것만이 중요한게 아니라
성경을 읽는 사람이 어떤 관점과 의도를 가졌냐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타나엘이 자신의 성경(율법) 지식에 지나치게 의존해서
과도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정하지 못하고 구약 시대의 유대인으로 남을 뻔 했다.
“나자렛”에서는 구원자가 나온다는 말이 성경에는 없으니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예수님을 부정할 뻔 했다.
논리적 결론이었지만 예수님을 구원자로 만날 수 있는 결론은 아니었다.

때문에 이 복음을 읽으면서 나는
나타나엘을 보고 그에게 먼저 운을 떼시는 예수님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예수님은 나타나엘이 코를 박고 있던 율법 두루마리의 논리 바깥에서
나타나엘에게 말을 거신다.
그와 대화를 하시면서 율법을 논함으로써 당신을 증명하시지 않는다.
그의 삶의 사소한 부분들, 말과 행동을 당신이 꿰뚫고 계심을 보여주시면서
그의 나날에 직접 관여하실 수 있고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는 구원자로
당신을 드러내신다.
율법과 예언서가 예언하는 전 이스라엘적 차원의 구원자상이 중요했을
나타나엘에게는 새로운 체험이었을 것 같다.
그는 예수님에 의해 자신의 개인적인 삶이 꿰뚫려 알려지는 체험에서부터
그분이 이스라엘의 구원자시라는 것을 한꺼번에 깨닫고 고백한다.
물론 예수님이 그를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신 이유는
그가 율법을 끈질기게 탐구하고 기도하며 구원자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과 신앙의 소유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나타나엘에게도 무지 고마워진다.
율법을 잘 아노라 하는 자신의 지식에 매몰되지 않고
필립보의 예수님 소개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예수님 계신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 그에게 정말 고맙다.
그 발걸음은 그가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는 발걸음이 되었다.

성령께서 알려주시는 율법의 진리는
내가 가진 기존의 논리 안에 갇혀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나엘이 알려주는 것 같다.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일 수 있던 이유는
그가 단단하게 세운 율법의 논리 자체가 아니라
율법을 탐구하고 지키며 간직했던 구원자를 바라던 간절함과
그에 못지 않은 그의 개방된 관점이다.
바리사이들과 율사들, 대사제와 사제들의 율법 논리는 너무나 단단했고
그들은 자신들이 확신하는 율법 논리와 다른 말을 하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분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예수님, 제가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고 묵상할 뿐 아니라
매일의 모든 상황과 순간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도록 해주소서.
때때로 저의 확신과는 다른 낯선 곳으로 이끄시는 당신의 손길에
용기를 가지고 발걸음을 내디뎌 응답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5-51
그때에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Gospel Jn 1:45-51
Philip found Nathanael and told him,
“We have found the one about whom Moses wrote in the law,
and also the prophets, Jesus son of Joseph, from Nazareth.”
But Nathanael said to him,
“Can anything good come from Nazareth?”
Philip said to him, “Come and see.”
Jesus saw Nathanael coming toward him and said of him,
“Here is a true child of Israel.
There is no duplicity in him.”
Nathanael said to him, “How do you know me?”
Jesus answered and said to him,
“Before Philip called you, I saw you under the fig tree.”
Nathanael answered him,
“Rabbi, you are the Son of God; you are the King of Israel.”
Jesus answered and said to him,
“Do you believe
because I told you that I saw you under the fig tree?
You will see greater things than this.”
And he said to him, “Amen, amen, I say to you,
you will see heaven opened and the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on the Son of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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