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9,38-40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

요한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데
그는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했습니다.’

오늘의 복음 앞에는 예수님의 두번째 수난과 부활예고(9, 30-32),
그리고 뒤이어 제자들이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9, 33-37)하고 논쟁을 합니다.
제자들의 ‘가장 큰 사람’ 다툼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9,35)
이 말씀을 듣고 난 후에도 제자들은 자기들을 따르지 않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낸 것에 대해 반박하며 그 행동을 저지합니다.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 곧 마주하게 될 스승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모든 이의 종이 되라고 하신 말씀 앞에서 제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무슨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막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우리들만 하는 것인데… 그것은 오직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유보된 힘인데…
제자들이 가지는 특권 의식일까요?
우리 편이 아니면 그가 무엇을 하든, 그 행동의 결과가 선이든 말든 하면 안되는 것일까요?
마치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공생활 내내 걸고 넘어졌던 율법 준수처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활동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든 말든
안식일에는 절대 일하면 안된다고 계속 반박했습니다.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무조건 율법은 지켜야 한다는 바리사이들이나
자기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고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는 제자들이나 무엇이 다를까요?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온 나라가 니편 내편 나누어 서로를 비방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여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인데
각 후보들을 지지하는 이유가 어디에 근거하는지 걱정스럽습니다.
지금 교회는 ‘공동합의적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을 주제로
세계주교시노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시노드의 정신처럼 우리 모두가 공동합의성의 정신으로 우리 삶을 성찰해 보아야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판단의 근거는 하느님의 뜻이어야 하며
그 뜻을 싱행하는 과정 안에서 모두가 함께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같이 걸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귀기울이고, 성령의 소리를 들으면서 걸어간다면
서로가 편 가르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 길로, 예수님의 길로 기쁘게 함께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 아닐까요?
– 제노 수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38-40
그때에 38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Gospel Mk 9:38-40
 
John said to Jesus,
“Teacher, we saw someone driving out demons in your name,
and we tried to prevent him because he does not follow us.”
Jesus replied, “Do not prevent him.
There is no one who performs a mighty deed in my name
who can at the same time speak ill of me.
For whoever is not against us is for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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