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8,18-22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은 제자들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이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고 오고 싶다는 허락을 청하고 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너는 나를 따라라”(마태18,22) 며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라고 하신다.
참으로 어이가 없고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오고 싶다는데……
이 제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하느님을 따르는 이 길에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필름처럼 머릿 속을 지나가고 있는 듯하다.
그 제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쨘~하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어릴 때부터 나의 꿈은 ‘수녀님이 되고싶어요’였다. 그렇게 간직한 꿈 수녀원에 입회를 하면서 실현될 수 있었다. 첫서원을 하고…종신서원을 하고…그런데,시간이 지날 수록 ‘수녀님이 되고싶어요’라는 꿈은 적나라한 현실 앞에서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사랑이신 하느님’이라는 초월적 가치를 살아내는 것은 정말 힘겨웠다. 많은 경우는 주님께 의지하며 그저 견디어 낼 수 밖에 없었다.
‘진짜 나’로 거듭나야 했던 정화의 시간이었다. 바로 ‘나’라는 존재를 하느님이라는 절대가치로써 관통해 냄으로써 성취해야 할 절체절명의 그 무엇이었다. 사방이 깜깜하고, 내 곁에 아무도 없었다. 그저 고통과 시련에 몸을 떨며 그 아픔에 몸부림을 칠 뿐이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어버릴 것 같던 그 때 그 시절….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하느님과 나 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제는 그 모든 순간들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되었다. 얼마나 감사한지…다행이다.

아버지의 장사를 먼저 치르고 오고싶다는 제자와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며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도 예수님께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청원을 수없이 해 보았다고. 그럴 때마다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것을 선택하며 눈물흘려야 했다고. 그래서 많이 아팠다고.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겪었던 그 모든 것을 알아 주신다고. 그리고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어느 순간에 그에 대한 보상을 나와 나의 가족들, 지인들에게 넘치도록 갚아주신다고. 그분은 아버지의 장사를 멋지게 치를 수 있는 손길들을 동원해 주심으로써 당신이 할 수 없는 몫까지 다 해 주신다고. 이제는 내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꿈을 알아듣겠다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그러니 안심하고 예수님 따라가도 될 것 같다고. 무엇보다 나를 지어내신 하느님께서 나를 믿어주고 계시니 겁내지 말고 따라가 보라고.

“수녀님이 되고싶어요!”
나의 꿈에 책임을 지는 한 사람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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