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7,1-2.10.25-30 사순 제4주간 금요일

오늘 복음 묵상을 하며 떠오른 생각은 ‘하지만 멈추지 않으셨구나.’입니다. 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했지만 유다를 피해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고, 예루살렘으로 축제를 지내러 가야했을 때는 남몰래라도 올라가셨습니다. 당신을 잡으려던 사람들이 있음을 아셨지만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심으로 해야 할 일을 하셨습니다.
저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유다가 위험하면 갈릴래아를 돌아다니는 것도 당연히 멈추어야 한다고, 죽이려는 사람이 있다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는 것도 이번엔 좀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하고, 나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해야 할 말도 삼켜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그분의 때’(30절)가 올 때까지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엉뚱합니다만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던 분이 생각났습니다.
얼마 전 가깝게 알고 지내는 어느 신부님의 어머니의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는 치매를 오래 앓으셨습니다. 멈춘 듯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사랑하는 아들 신부의 존재도, 일상 행동의 순서도, 기본적인 언어까지도 천천히 잊혀갔는데 가장 마지막까지 남았던 건 기도문이었다고 합니다. 그 기도문은 사라지지 않은 기억이 아니라, 어쩌면 어머니의 존재 자체가 아니었을까요. 평생 수도 없이 말했던 무수한 단어들은 거의 모두 잊혔지만 끝내 남았던 기도문. 미사를 마치고 수녀원으로 돌아오는 길, 습관마저도 사라진 투명한 영혼 안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기도문을 생각했습니다. 평생 뇌었던 말이라 해서 모든 말들이 남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가령 “밥 먹어라.”를 평생 말씀하셨어도 그 말이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아니지요. 수도 없이 습관적으로 행했던 동작도 눈 녹듯 사라져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 자연스러운 동작마저도 거짓말처럼 멈출 수 있는데,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남은 그 기도의 언어들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내 생의 마지막 순간 내게는 무엇이 남을까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대면할 때마다 우리들끼리도 치매만은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종종 이야기하곤 했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지금까지는, 죽음에서마저도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했고 앓는 것보다 잃는 것을 더 두려워했지만, 오늘부터는 내 의지라곤 하나도 남지 않은 순간에도 남아 있을, 어머니의 기도문 같은 것을 내 온 몸에 각인시키며 살아야겠다 싶었습니다. 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놓아도 놓아지지 않는 기도의 언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숨 같은 기도의 말을 부단히 내 영혼에 새겨야겠다 싶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때’를 마주할 그날까지 예수님처럼 멈추지 않고 해야 할 일을 계속해야겠다 싶었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2.10.25-30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다.
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2 마침 유다인들의 초막절이 가까웠다.
10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
25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몇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26 그런데 보십시오. 저 사람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7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28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29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30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Gospel Jn 7:1-2, 10, 25-30
Jesus moved about within Galilee;
he did not wish to travel in Judea,
because the Jews were trying to kill him.
But the Jewish feast of Tabernacles was near.

But when his brothers had gone up to the feast,
he himself also went up, not openly but as it were in secret.

Some of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said,
“Is he not the one they are trying to kill?
And look, he is speaking openly and they say nothing to him.
Could the authorities have realized that he is the Christ?
But we know where he is from.
When the Christ comes, no one will know where he is from.”
So Jesus cried out in the temple area as he was teaching and said,
“You know me and also know where I am from.
Yet I did not come on my own,
but the one who sent me, whom you do not know, is true.
I know him, because I am from him, and he sent me.”
So they tried to arrest him,
but no one laid a hand upon him,
because his hour had not yet 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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