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찬미받으소서> 주간’을 향한 네 번째 걸음~!


“창조는 사랑의 질서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모든 피조물 안에 있는 근본적 동력입니다.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혜 11,24).’
그래서 모든 피조물은 그 각자의 자리를 세상에 마련해 주신
하느님 아버지의 온유함의 대상입니다.
가장 하찮은 것의 덧없는 생명조차도 하느님의 사랑의 대상이며,
아주 잠깐 살아 있어도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 주십니다.” (77항)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저지른 악행에서도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실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거룩한 정신에 합당한 무한한 창조력을 소유하시어
가장 복잡하고 풀 수 없는 인간 문제의 매듭을 푸는 방법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제하시며 어느 모로 개선의 여지가 있는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악이나 위험 또는 고통의 원천으로 여기는 많은 것들은
사실 우리가 창조주와 협력하도록 이끄는 출산의 고통이 됩니다.”(80항)

 “이 세상의 다른 피조물들에 대한 무관심이나 잔혹함은
언제나 어느 모로든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여서 동물을 학대하도록 이끄는 비열함은
곧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 어떤 피조물에 대한 것이든 모든 학대는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평화와 정의 그리고 피조물 보호는 서로 철저하게 연결된 주제입니다.” (92항)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도움 영상 – <Everything is connected.>


미국의 역사학자 린 화이트(Lynn Townsend White, Jr. 1907–1987)는
‘우리 시대 생태적 위기의 역사적 기원’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 1967)에서
인류가 당면한 생태적 위기의 근원은 그리스도교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그리스도교는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한
인간중심주의적인 자연관과 이를 토대로 한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도록
사상적인 기반을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땅을 “지배”(창세기 1,28)하게 했다는 말이
창세기에 나온다는 것을 근거로,
인간을 본성적으로 지배적이고 파괴적인 존재로 묘사하면서
유다-그리스도교 사상이 무분별한 자연 착취를 조장하였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다른 피조물을 고려하지 않는 자의적인 인간 중심주의는 근본적인
그리스도교 입장이 아닙니다.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때로는 성경을 부정확하게 해석한 것이 사실이지만, 성경의 율법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를 위한 다양한 규범을 인간에게
차근차근 제시하고 있습니다. (회칙67, 68항 참조)

 
“이 세계 여정의 목적은 하느님의 충만 안에 놓여 있습니다.
다른 피조물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인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피조물은 우리와 더불어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공동의 도착점,
곧 하느님을 향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품어주시고 빛나게 해주시는 초월적 충만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이끌려 모든 피조물을
그들의 창조주께 인도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83항)



* 함께 읽어요~! ▶ 회칙 62~100항


0 답글

댓글을 남겨주세요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