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수녀님의 성탄메시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전 세계에 계시는 사랑하는 수녀님들께

하느님의 말씀이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를 그분의 신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인성을 취하신 육화 의 신비를 경축하는 거룩한 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탄생하시어 우리 중의 하나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경계 를 넘으시어,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 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필리 2,6-7) 그분은 모든 경계들 을 초월하여, 사회적, 문화적, 인종적, 정치적인 모든 테두리들을 넘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남녀들에 게 오셨습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요한 3,16) 하느님의 사랑은 각 사람의 자유를 무한히 존중합니다. 그러기에 그리스 도의 탄생은 나자렛에 사는 마리아의 온전한 “예”라는 응답을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하느님의 왕국은 축복받은 동정녀가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응답했을 때 이 땅 위에 시작 되었습니다. 영혼안에 밝혀진 신적 생명은 어둠 속으로 들어온 빛이며 거룩한 밤의 기적입니다.… 하느 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그분 안에 있으며, 이것은 육화로 이루어진 하느님의 왕국에서 우리의 몫입니다.” (에디트 슈타인)

성탄은 그분의 거처, 그분의 육화의 장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비로 들어오라는 초대입니다. 그 러나 “여관에는 마리아와 요셉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이 환대를 거절하는 것은 우리 현대 사회 의 상징인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일어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평안함, 안전, 그리고 우리 자신의 안 락한 지대로 피신하여 타인을 위한 공간을 내어주지 못합니다. 만일 우리가 아버지의 무상의 선물인 말 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초라한 구유가 되어, 예수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라는 부르심을 받아들인다면 그분의 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육화의 신비, 자기 비움 (케노시스)의 정신은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초대하면서 우리 상호문화적 삶의 영적인 토대가 됩니다. 육화를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 사랑은 테두리와 경계를 넘어 우리가 상호문화성 을 살아가도록 그 길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분의 신성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보여주신 육화와 자기비움의 길을 따르고 이 초대를 받아들인다면 그분의 신적 생명이 우리 안에서 탄생하게 될 것입니다. 이 육화는 과거에 이미 끝난 사건이 아니라,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 안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하느님의 아들은 겸손의 길, 가난의 길, 사랑의 길 그리고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비우고 모든 영역과 경계를 넘어오셨습니다. 가난함이나 환경의 불편함 도 새로 태어난 아기 예수와 함께 하는 성가정의 신성한 기쁨을 방해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은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가 살아가는 상황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번 성탄절에 가장 본질적인 것을 놓치지 않게 되는 은혜를 청하면서, 겔트루드 링크 수녀님께 서 북한 옥사독(Oksadok)에서 쓰신 시의 일부를 함께 나눕니다.

‘1950년 성탄절’ 중에서

형제 자매들이여 슬퍼 마시고 참으로 마음 가득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오늘처럼 구유의 아기를 참으로 가까이 모신 적은 정녕 없었습니다.

비록 성탄의 장엄한 종소리도 아름다운 풍금소리도
대성당의 둥근 지붕의 화려한 장식도 금실과 은실로 수놓은 성탄 제의도
즐겁게 울리는 기쁨의 환성도 없고

크리스마스 트리도 없고 천사들의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고
따뜻한 사랑으로 몰래 준비하는 반짝이는 성탄의 장식들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지만, 빛나는 광채라고는 전혀 없지만
그래서 본 모습 하나도 감추는 것 없이 성탄의 참된 신비
그 가난과 단순함 속에 고스란히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아무것도 없는 극도의 가난 속에서 지내는 이 외양간의 성탄에
하느님께서 참으로 내려오십니다.
초라하고 조그만 빵에 모습을 감춘 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외양간의 마리아의 아기와 우리, 우리가 매어 달릴 하느님 계시오니
형제 자매들이여 기뻐하십시오. 우리가 또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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