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라.
Chisto omnino nihil praeponant. R. B.
– 머리말 72,11
▶ 하느님은 한꺼번에 당신 힘을 떨치시어 영혼을 사로잡지 않으신다. 영혼 깊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께서 수동적으로 주시는 고통을 참아내려면 참으로 능동적인 수덕 실천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느님은 은총을 통해 이러한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특별한 힘도 주신다.
▶ 의지나 이성에 적합한 수행이나 유익한 고행을 피하면서 필요하지도 않는 약만 잔뜩 집어 삼키는 영적 염려증 환자도 있다. 고행의 참된 척도는 사랑이라고 성 토마스는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속하는지 아닌지의 척도가 되는 사랑에 반대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극기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다. 사실 우리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사랑은 하느님과 이웃한테서 훔친 사랑이기에 우리는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
사랑은 줄 때에만 지속될 수 있다. 사랑은 훔치거나 빼앗으면 그 사랑은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기에 죽은 사랑이 된다.
▶ 능숙한 연주가는 손가락이 무엇을 하는지 의식하지 않는다. 그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마음쓰지 않는다. 그의 손가락은 본능적으로 현 위에서 부드럽게 움직인다. 그 음악가는 세부적 기술에 집중하지 않고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에 심취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묵상하는 법을 배울 때 하느님의 진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정신에 드러날 것이다.
사랑으로 하느님을 찾고 묵상으로 하느님을 발견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바라봄으로써 그 사랑을 살찌운다.
▶ 식별의 선물은 관상에 유익하다. 식별의 선물로 이성을 날카롭게 만들고 정신을 예리하게 하신다. 곧 부정의 어둠인 하느님의 밤 속에서 나아갈 지라도 정신이 어둠이 아니라 빛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식별의 선물에 따라 마음은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을 찬양하기 위해 들어 올려 진다.
▶ 자유는 모든 고행의 목적이다. 간단히 말해 내적 삶에 대해서 진보하는 비법은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완전히 자신에서 벗어나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내어 드리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내어 드리면 하느님께서도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완전히 내주신다.
▶ 어떤 영혼들은 영적 타성에 젖어 평화에 대한 환상을 가진다. 그러나 이 평화는 흐르지 않고 괴어 있는 연못의 물처럼 썩어 버릴 것이다. 사람은 하느님을 완전히 알고 사랑할 때 쉴 수 있다. 하느님 안에서는 영혼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장애물도 없으며 더 이상 어떤 노력도 할 필요가 없기에 피곤함도 없다.
▶ 자신의 우수한 기능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사람은 즉시 자연적 휴식 상태에 들어간다. 그러나 하느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여기에서 쉴 수 없다. 사랑과 하느님 은총의 내적 활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적인 사람은 자연적 휴식 상태에서 오랫동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 영혼안에 계신 하느님의 성령은 이런 특징을 보여 주신다. 곧 하느님은 영혼에게 다른 사람들의 일, 특히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함도 가져다주지 않는 일을 무시하고 알고 싶어 하지 않도록 이끄신다. 성령은 영혼이 외적인 일에 관여하기보다 멀어지도록 이끄신다. 그러므로 영혼은 자기가 친숙했던 방법인 무지 속에 머무르게 된다.
▶ 정신이 기도에 잠심(潛心)하고 의지가 하느님만 바라보고 하느님 안에서 쉴 수 있게 되면 단순한 행동 하나만 하게 된다. 영혼은 하느님한테서 오는 수동적 지식과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단순한 지견이나 인식’의 태도를 유지한다. 참으로 이것은 하나의 활동이다. 이는 참으로 고요한 것이고 성령의 감미로운 작용에 완전히 지배를 받는다.
▶ ‘망각’과 ‘영의 경청’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 수동적 경청은 은총에 매혹당한 영혼이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단순한 지견이나 인식’보다 강렬하고 순수하다. 여하튼 여기에서 이성의 활동은 중단된다. 영혼의 기능들은 하느님께 완전히 흡수되지는 않지만 하느님께 주도권을 내드린다. 정신과 의지는 자신과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 사랑은 모든 관상의 목적이며 완성이다.
관상자체는 목적이 아니다.
관상은 성화가 아니다.
관상은 비록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 생활의 완전한 성숙에 이르는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리스도인의 완전하고 성숙한 삶은 본질적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온전히 사랑하는 데 있다.
▶ 모든 사람은 하느님을 뵙겠다는 숭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하느님 은총의 도움을 받는 천부적 기능, 특히 이성과 의지를 사용하여 이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 은총은 하느님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영혼이 더렵혀지는 것은 스스로 하느님의 호의를 배척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과 의지의 숭고한 열망을 합리적으로 만족시키는 유일한 수단으로 그에게 제시된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 비이성적 정신 때문이다.
▶ 저승에서 영광의 빛이 하느님을 밝히 뵙게 하는 매개체로 사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승에서는 믿음이라고 하는 사랑어린 어두운 지견이 하느님과의 합일을 위해 도구로 사용된다. 십자가의 성요한은 성 토마스가 ‘믿음은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라고 한 유명한 말을 반복한다.
▶ 믿음과 하느님은 매우 비슷해서 우리가 보는 하느님과 믿는 하느님의 차이밖에 없는 까닭이다. 이처럼 하느님은 당신 빛 속에서 영혼에게 나타나시는데 하느님의 빛은 모든 이성을 초월한다. 영혼의 믿음이 클수록 우리는 하느님과 완전히 합일한다.
▶ 가장 깊은 영적 어둠과 무지의 밤, 가장 순수한 믿음 속에서 하느님은 영혼을 당신과 신비적으로 하나 되게 하신다.
▶ 신비가는 비단 눈과 상상력과 정신으로뿐 아니라 온 영혼과 본성으로, 용광로 속에서 쇳덩이가 변하듯이, 무한히 밝은 나머지 우리 이성에는 완전한 어둠으로 보이는 타오르는 빛의 심연으로 들어간다. 쇠는 달구어져 불처럼 변한다. 신비가는 하느님으로 ‘변화’된다.
▶ 우리에게 제시된 하느님에 대한 지식은 우리의 감각이나 자연적 이해력과는 관계가 없다. 믿음은 우리가 동의할 때 감각을 통해 주어진다. 성바오로께서 “믿음은 들음에서”(로마10,17)라고 말씀하신 대로 그 뜻인 즉, 믿음이란 감각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이 아니라 들음을 통한 동의일 따름이다.
▶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히브11,6) 하느님의 마음에 든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하느님은 당신 본성과 사랑과 진리로 가득한 영혼을 보실 때 기뻐하신다. 하느님을 알 때 우리는 신비로운 방법으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다. 마음으로 하느님의 빛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하느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끈다.
▶ 하느님을 사랑하는 영혼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우화로 간주되는 믿음이 아니라 믿는 이의 영혼 속에 존재하고 작용하며 살아있는 실체로 간주되는 믿음으로 향한다.
▶ 믿음은 ‘어둠으로 당신 몸을 감싸시고 구름을 두르시는’(시편18,12)하느님이 실제로 숨어계신 곳이다. 십자가의 성요한은 「영적찬가」에 “숨어있는 보물을 찾고 싶다면 그 보물이 숨어 있는 곳에 몰래 들어가야 한다. 그 보물을 찾으면 너 또한 보물처럼 숨어버려야 한다.” 고 말한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12 |
[안셀름 신부의 성탄선물]
집지기
|
2016.12.25
|
추천 0
|
조회 2004
|
집지기 | 2016.12.25 | 0 | 2004 |
11 |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샤를 드 푸코-
집지기
|
2016.12.20
|
추천 0
|
조회 1819
|
집지기 | 2016.12.20 | 0 | 1819 |
10 |
[공감하는 능력] - 로먼 크르즈나릭
집지기
|
2016.12.12
|
추천 0
|
조회 1862
|
집지기 | 2016.12.12 | 0 | 1862 |
9 |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산문집
집지기
|
2016.12.01
|
추천 0
|
조회 2232
|
집지기 | 2016.12.01 | 0 | 2232 |
8 |
[왜 우리는 통하지 않을까] - 황창연 신부
집지기
|
2016.11.26
|
추천 0
|
조회 1826
|
집지기 | 2016.11.26 | 0 | 1826 |
7 |
[네 안에서 하느님을 찾아라] -쟌느 마리 귀용-
집지기
|
2016.11.02
|
추천 0
|
조회 2100
|
집지기 | 2016.11.02 | 0 | 2100 |
6 |
[샘에서 생기를] - 성녀 마더 데레사, Tezze 로제수사
집지기
|
2016.10.09
|
추천 0
|
조회 1827
|
집지기 | 2016.10.09 | 0 | 1827 |
5 |
[심연] - 배철현 저. 21세기북스
집지기
|
2016.09.14
|
추천 0
|
조회 2023
|
집지기 | 2016.09.14 | 0 | 2023 |
4 |
십자가의 성요한과 진리의 산길 -토마스 머튼-
집지기
|
2016.08.16
|
추천 0
|
조회 2169
|
집지기 | 2016.08.16 | 0 | 2169 |
3 |
인간은 섬이 아니다
집지기
|
2016.07.01
|
추천 0
|
조회 2347
|
집지기 | 2016.07.01 | 0 | 23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