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8,31-42 사순 제5주간 수요일

오늘 복음을 읽고 있으면 답답하다.
다른 사람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을 대할 때
느끼는 답답함이다.
유다인들의 확신은 대단하다.
종노릇 한 적 없는 아브라함의 후손,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고
한 분 하느님이 우리 아버지.
자신들이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충고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들의 이런 확신에 막혀 버린다.
이들은 심지어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들이 확신하는
그들의 정체성에는 굉장한 자부심이 들어있다.
이집트 탈출 이래 나라는 비록 망했어도
하느님이 선택하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또한 하느님만이 아버지시다.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원문을 직역하면
‘우리는 간음/성매매를 통해 태어나지 않았소’이다.
‘간음’이나 ‘성매매’는
구약의 예언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르는,
하느님과의 계약에 대한 불충실을 빗대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요한 복음의 본문은
‘우리는 신앙에 불충실한 죄를 저지른 적이 없소’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얼마나 자기 확신에 찬 단언인가.
한 번도 신앙에 불충실한 적이 없다니!

그들은 율법에 정해진 기도들과 전례행사들을
꼬박꼬박 거행했을 것이고,
자잘한 생활 규정을 얄짤없이
다 지키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답답하다.
왜 예수님 말씀은 먹히지가 않는걸까.
그들의 ‘하느님에 대한 충실함’은 대체 뭐였을까?
충실한 것 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여기서 나온 과도한 자기확신이 아니었을까?
율법 준수에 기댄 과도한 확신 말이다.
이런 사람과는 아무리 의사소통을 하려 해도
소용이 없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이 유다인들을 보면서,
진정으로 내가 하느님의 진리를 깨닫고
자유로워지는 데에 결정적인 장애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요한 복음 뿐 아니라 모든 복음을 통틀어서
예수님은 언제나 율법 준수 위주의 신앙을 경고하신다.
법에 대한 준수는
내가 내 자신을 확신할 수 없을 때에
무척 강하게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
일종의 ‘점수’로 하느님에 대한
나의 충실성을 환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신앙의 점수는
다른 사람의 점수와 비교하기도 쉽다.
그러나 나의 확신을 흔들수도 있는 충고에 마음을 열고
귀기울여보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 같다.
그것은 내가 믿는 나 자신을
기꺼이 의문에 부치는 일인데,
그런 불안한 상태를 사람들은 싫어하기 때문이다.
또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점수로 환산해서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진리를 통해 자유로워지는 것은 힘든 일이다.
자기 감방이 엄청 넓어서 좁은 감방의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신이 진정 자유롭다고 믿는 사람에게
감옥 자체가 자유로운게 아니라고 암만 말해봐야
그를 이해시키기는 힘들다.

하느님,
저희가 저희의 아집 안에 갖혀 있지 않고
당신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보나벤뚜라 수녀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31-42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33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너희가 자유롭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까?”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35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39 그들이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한 일을 따라 해야 할 것이다.
40 그런데 너희는 지금, 하느님에게서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이야기해 준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한다.
아브라함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41 그러니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따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오.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오.”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에 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Gospel Jn 8:31-42
 
Jesus said to those Jews who believed in him,
“If you remain in my word, you will truly be my disciples,
and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They answered him, “We are descendants of Abraham
and have never been enslaved to anyone.
How can you say, ‘You will become free’?”
Jesus answered them, “Amen, amen, I say to you,
everyone who commits sin is a slave of sin.
A slave does not remain in a household forever,
but a son always remains.
So if the Son frees you, then you will truly be free.
I know that you are descendants of Abraham.
But you are trying to kill me,
because my word has no room among you.
I tell you what I have seen in the Father’s presence;
then do what you have heard from the Father.”
 
They answered and said to him, “Our father is Abraham.”
Jesus said to them, “If you were Abraham’s children,
you would be doing the works of Abraham.
But now you are trying to kill me,
a man who has told you the truth that I heard from God;
Abraham did not do this.
You are doing the works of your father!”
So they said to him, “We were not born of fornication.
We have one Father, God.”
Jesus said to them, “If God were your Father, you would love me,
for I came from God and am here;
I did not come on my own, but he sent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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