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0,31-42 사순 제5주간 금요일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32절)

성경 텍스트에서 유독 마음에 와 닿는 단어는 세 번이나 나오는 “돌”이다. 성경 안에서 ‘돌’에 대한 의미는 많이 나온다. 유다인들은 율법을 거스르는 일을 한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이거나 혹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게 한 뒤 그 위에 돌을 쌓았다(마태21,44; 루카4,29. 11,47; 신명 17,5 등).

교회는 성지주일을 앞두고 요한 복음사가를 통하여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고백을 하면서 당시 기득권자들이 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자신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기를 원했고 어떠한 죄목으로 돌을 던지려고 하는지를 대답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라고 하셨기에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즉 신성모독죄로 고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32절) 라는 질문이 나에게 하시는 것 같다.
즉 돌을 든 나는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를 아는가? 이 돌의 무게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이다. 때론 돌의 무게 즉 죽음을 안겨줄 수 있는 사형도구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무책임한 나를 본다. 즉 내 자신이 하느님인양 나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착각 속에 내가 가진 짧은 지식과 좁은 삶의 연륜의 잣대로 세상과 이웃 그리고 나 자신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가혹하고 무자비한 ‘돌’을 던지는 교만한 나를 바라본다.
특별히 이 시대에 희망의 등불을 비추어 주는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인 <모든 형제들>에서 “인터넷과 여러 디지털 소통 공간을 통하여 언어폭력의 관계망에 갇혀 있을 수 있습니다. 도를 지나친 비방과 폭언이 난무하며 모든 도덕 기준과 타인의 명예에 대한 존중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서로를 고립시키는 가상의 집단을 만들고 형제애를 건설하지 못하는 희망이 사라지게 한다고 한다.

내가 던진 수많은 돌을 고스란히 맞으시고 피와 멍으로 얼룩지고 찢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시는 그윽한 눈빛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고백하듯 사랑의 주파수를 던지시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본다. 자신에게, 이웃에게 죽음의 ‘돌’을 던지려고 하는 나를 인식하면서 예수님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는 나와 이웃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승리하는 자에게 주는 ‘흰돌’(묵시2,17)을 던지는 성주간의 복된 시간이 되기를 청해본다.

“주님은 참 사람이며 참 하느님이십니다.” (요한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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