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렬 오틸리아 수녀님 (Sr. Ottilia Park, OSB) 장례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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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렬 오틸리아 수녀 (1923-2020)
첫서원 : 1948년 10월 28일
종신서원 : 1954년 2월 10일

사랑하올 박 오틸리아 수녀님
서원 생활 72년을 일기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늘 본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박 오틸리아 수녀님을 기억하며…

오틸리아 수녀님은 첫 서원 후 덕원 수도원 본당에서 전교하시다가, 북한의 공산화가 시작되던 1949년 5월 17일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강제로 해산된 수녀원을 떠나, 남루한 사복 차림으로 본가에 가시게 되셨고, 본가에 계시는 동안 공산당 정치 보위부에 여러 차례 호출당하여 몹시 불안한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루카복음 21장 14절의 “너희가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담대하게 그 두려움을 물리치셨습니다. 평양 본가에서의 불안한 생활 중에도 수도생활에 대한 열망으로, 수녀님은 수녀원 해산으로 인해 각자의 본가에 머물던 다른 수녀님들과 함께 미군용 트럭을 타고 평양에서 사리원, 사리원에서 개성, 개성에서 다시 서울까지의 험난한 피난의 여정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일반인이기 때문에 함께 동행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던 여동생 두 명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한평생 수녀님은 힘들어 하였고, 이산가족의 아픔 속에서 평생을 지내셨습니다. 함께 남하한 수녀님들과 서울 명동에 위치한 샬트르 바오로 수녀원에서 기거하던 수녀님들은, 다시 부산으로 피난해야 했고, 부산에서의 피난 생활 중 오틸리아 수녀님은 광주대교구의 요청으로 1951년 광주 북동성당에서 4개월 정도 전교를 하셨습니다. 1951년 11월부터는 대구대교구의 배려로 남산동 한옥에서 6.25동란에 참전한 미군들의 군복 세탁과 삯바느질로 수녀원의 살림에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오틸리아 수녀님은 원산수녀원의 마지막 입회자로서 1954년 2월 10일 삼덕성당에서 5분의 수녀님과 함께 종신서원을 하셨습니다.
 
남한 피난 시절의 고초, 그리고 대구에서 시작된 새로운 수도생활의 고단했던 당시를 회상하시던 수녀님의 모습은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계시는 하느님께 의탁하면서 미래의 그 날을 희망하셨음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남산동 수녀원에서 하던 추운 겨울의 미군복 빨래는 고무장갑도 없이 곱은 손을 불어가며 해야 했던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손등으로 불어대는 살을 에이는 바람, 그리고 얼음장 같은 물. 그 모든 것을 인내하고 참아 견디셨던 수녀님! 수녀님의 그 모든 희생은 현재의 우리 공동체를 위한 소중한 희생 제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을 사는 우리는 어떤 희생과 봉사로 이어가야 하는지 다시 우리의 수도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모든 것을 감사하시던 오틸리아 수녀님!
온전히 일생을 하느님께 의탁하신 수녀님.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말씀하시던 수녀님.
이제 하느님 나라에서 수녀님이 평생토록 사랑하시던 하느님을 만나셨겠지요!
부디 우리 수도공동체의 좋은 전구자 되어 주시고, 하느님 면전에서 주님의 평화와 행복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틸리아 수녀님, 저희와 한평생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오틸리아 수녀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박 비안네 부원장 수녀님의 박 오틸리아 수녀님 약력보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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