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파코미아 수녀님 (Sr. Pachomia Kim, OSB) 장례 4.7

+ 김선미 파코미아 수녀 (1953-2020)
첫서원 : 1984년 2월 10일
종신서원 : 1988년 8월 6일

사랑하올 김 파코미아 수녀님
서원 생활 36년을 일기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늘 본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김 파코미아 수녀님을 기억하며….

실향민이셨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수녀님은 북한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많았고 남달랐습니다. 수녀님은 2015년 서울 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의 요청으로 시작된 대북지원 사업의 모니터링을 위한 방북을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의 돌발 상황과 여건의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녀님은 특유의 친화력과 신뢰로 북한의 관계자들이 믿을 수 있는 “김선미 선생”이었습니다. 병상에서도 수녀님은, 대북지원사업을 위한 방북을 건강상 이유로 지속할 수 없음에 많이 힘들어 하며,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콩 우유 배급 사업을 이루고자 애쓰셨습니다. 수녀님은 북한의 가난하고 헐벗은 형제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생명까지도 내어줄 수 있는 용기로 가득한 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수녀님은 건강이 나빠져 많이 힘들고 지친 건강 상태였지만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 의지하며, 그 모든 고통을 북한 주민들을 위한 희생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수녀님은 2년 동안 반복된 항암치료에도 굳건하게 잘 견디고 버티어 내셨고, 수도 공동체 식구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무단히 노력하셨고, 사후의 장례절차까지도 번거롭지 않고 공동체에 피해가 되지 않기를 부탁하셨습니다. 수녀님은 병원에 입원하거나,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언제나 성당 2층 의자에 꼿꼿한 자세로 기도와 미사, 그리고 성체조배를 하셨습니다. 이러한 시간이 육체적으로는 무척 견디기 힘든 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수녀님은 분명 자신의 희생을 번제물로 드리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했으리라 생각됩니다.

파코미아 수녀님의 일생은 오로지 하느님을 바라보며 수도자로의 모범을 보이신 삶이었습니다. 장소를 불문하고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 위로하고 함께 하셨던 수녀님. 특히 굶주리고 있는 북한의 어린이들을 위해 콩 우유 공장을 세워주고 싶어 하던 수녀님. 우리 수녀원이 있었던 원산을 꼭 한번 찾아가 보기를 희망하였던 수녀님.
이제 그 꿈을 하늘나라에서 마음껏 누리고 계시겠지요!
수녀님. 우리는 이제 수녀님이 힘겹게 지고 오셨던 그 무거운 육체적 고통을 다 내려놓으시고, 하느님 면전에서 편히 쉬시고, 우리 수도회의 좋은 전구자 되어 주시길 부탁드리며 기도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마음속에 지니고 일생을 수도자로, 또한 선교사로 살아오신 파코미아 수녀님, 그동안 저희와 함께 해 주신 날들과 공동체에 베풀어 주신 그 모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파코미아 수녀님 안녕히 가십시오.

주님, 파코미아 수녀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박 비안네 부원장 수녀님의 김 파코미아 수녀님 약력보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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