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만날 때마다 떠오르는 말,

더도 덜도 말고 꼭 세판을 일컫는 말, 바로 삼세판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
시몬 베드로에게 던지시는 물음 그리고 베드로의 대답.
꼭 삼세판이다.

한판의 질문과 대답.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이어서 두판째 주고 받으신 질문과 대답.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그리고 드디어 세판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과연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듣고 싶으셨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세 번이나 당신을 모른다며 당신을 저버린 수석 제자 베드로의 마음을
예수님은 진작부터 알고 계셨기에 실망과 안타까움보다는
연민과 안스러움으로 가득한 마음이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의 실패로 예수님을 뵐 면목이 없어진 베드로는
예수님의 물음에 담긴 그 마음을 어떻게 알아들었을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 사건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에게는
각각의 첫 부르심과 응답을 하나로 완성하는 일생일대의 체험이었으리라.

얼마 전, 일본 나가사키 교회 공동체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펼쳐들게 되었던 엔도 슈사코의 소설,
<침묵> “예수의 얼굴을 밟아라. 밟고 배교하면 저 사람들을 살려 줄 것이다.”
포르투갈에서 일본에 파견된 예수회 신부,
로드리고의 고뇌를 나의 것으로 대입해 보기도 하면서
바람결을 타고 들려오는 예수님의 음성에 귀기울여 보기도 하였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알고 있다.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졌다……”
예수님의 포용과 연민 어린 사랑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내 마음을 깊게 내리누르는 무거운 돌 하나가 있다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라고 하신 명령은
진정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하는 물음이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제자로서, 예수님께서 믿고 맡기신 양들을 돌볼 사명을 지닌 사도로서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진정 원하시는 <따름>은 어떠한 발걸음일까?
물론 오늘날 내가 머물고 있는 한국 교회는 박해의 시대를 지나고 있지 않다.
그러하기에 상상 속에서만 대입해 볼 수 있는 무거운 물음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물음에 대한 답을 하고 싶음은 욕심일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택하신 방법,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택하신 걸음은
다름 아닌 십자가에 못 박혀 발걸음을 멈추고,
머무르신 <정주 定住>의 시간이었음을 떠올려 본다.​
<나를 따라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 낯익은 부르심에
본격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신앙과 용기를 청하며 나의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전 요세피나 수녀

+ 요한 21,15-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 15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16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Gospel, John 21,15-19

15 When they had eaten, Jesus said to Simon Peter,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others do?’ He answered, ‘Yes, Lord, you know I love you.’ Jesus said to him, ‘Feed my lambs.’

16 A second time he said to him,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He replied, ‘Yes, Lord, you know I love you.’ Jesus said to him, ‘Look after my sheep.’

17 Then he said to him a third time,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Peter was hurt that he asked him a third time, ‘Do you love me?’ and said, ‘Lord, you know everything; you know I love you.’ Jesus said to him, ‘Feed my sheep.

18 In all truth I tell you, when you were young you put on your own belt and walked where you liked; but when you grow old you will stretch out your hands, and somebody else will put a belt round you and take you where you would rather not go.’

19 In these words he indicated the kind of death by which Peter would give glory to God. After this he said, ‘Follow me.